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칼럼 1_'파지노인'과 정치

정경화 | 기사입력 2019/04/08 [22:28]

칼럼 1_'파지노인'과 정치

정경화 | 입력 : 2019/04/08 [22:28]

 

파지노인과 정치

 

 

 

정경화 / 저널인미디어 편집부장

 

평창동에 살고 있다. 부자들이 사는 저 높은 곳이 아닌 저지대에 살고있다. 빈부의 경계가 어디인지는 몰라도 내가 사는 곳은 평창동이다.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밤 기온이 차다.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, 가로등 불빛 아래로 등 굽은 파지 줍는 노인의 모습이 들어왔다. 늦은 밤에 자주 보이는 익숙한 모습이다. 종이박스와 책을 버리러 나간 어느 날, 노인과 처음 얘기를 나눴다.

 

왜 이리 늦은 시간에 다니세요?” 건네받은 종이 박스를 해체하며 노인이 말한다.

낮에는 경쟁자들이 많아 수레를 끌고 돌아 다녀도 마음만 급하지 수확이 별로 없어

 

동네에서 파지 줍는 노인을 본 것만 4~5명이었으니 이 업종에도 경쟁이 있다는 말인가. 집안 정리를 하고 버릴 것들을 내다놓고 보니 분리수거 딱지를 붙여야 할 형편이다. 어쩌나하고 있는데 그 노인이 나타났다. “낡은 의자 두 개, 작은 테이블 하나를 처리해 주실래요? 2만원 드릴게요노인의 행동이 빨라졌다. 남루한 옷차림에 굵은 주름이 파인 얼굴. 웃어본 적이 없을 것 같았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. 하루벌이가 1~2만 원 정도라니 그럴 만도 하다.

 

정부에서 지원 받는 분들도 있다고 하는데 동사무소 같은 데는 가 보셨어요?”

하늘에 별 따기야. 무슨 말인지도 못 알아듣겠고 해달라는 서류만 해도 한 뭉치야라며 손 사레를 친다.

그래도 쥐꼬리만큼 받기는 해, 그것도 감지덕지지.”

그가 가진 정부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될까?

 

그로부터 얼마 뒤 새벽, 밖에서 빈병 고르는 소리가 들린다. 따뜻한 집 창문너머 노인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언짢다. 관리 못한 노인의 흰 머리가 어깨까지 드리워져 있다.

나라는 대체 뭐하는 거야?”

이 사람의 가난을 오직 그의 탓으로만 돌려도 되는 거야?

볼멘소리가 내 목을 넘어온다. 몰라서 국가에 요구할 수 없고, 요구해도 까다로운 조건. 나라가 이 들 편에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.

광화문 촛불의 시민혁명과 310일 헌재 판결이 생각났다.

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.

짧지만 긴 문장이다. 촛불혁명의 숭고한 의미와 대한민국 정치의 어두움을 거둬낸 큰 뜻을 담고 있다. 판결 주문을 듣는 순간 전율이 느껴진다. 심장이 고동쳤다.

광화문 광장의 촛불, 그것은 분명 추한 권력의 민낯을 드러내게 만든 힘이었다. 그 속엔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법치국가로 바로 서게 만들었던 저력이 숨어있었다. 촛불행진을 하면서 눈을 마주쳤던 낯모를 이들과 함께 만들어낸 시간들이 아직 내 가슴에 남아있다. 그 때 들었던 촛불은 새로운 역사에 대한 희망이다.

하지만 탐욕스런 위정자를 징치하고 법의 가치를 높인 역사가 정작 파지 줍는 노인에게는 무엇일까? 파지노인에게도 새로운 역사의 희망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을까? 우리들만의 시민혁명이 아닌 그들의 삶도 녹여낼 수 있는 혁명 같은 것 말이다.

 

정치(政治)바로잡음이라고 한다. 정약용은 백성에게 균등하게 나누어줘 바로잡으니 이를 일러 정치라고 했다. 정치는 신뢰다. 국민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면 정부는 존재하지 못함을 광화문의 촛불이 일깨워주었다. 몇 십억 짜리 말을 타고 호사부리는 정유라와 추운 날 고물 리어카를 끄는 파지 줍는 노인 사이에 놓인 이 극단의 간격이 좁혀져야 정치다.

대통령의 탄핵은 광화문 광장에서 이게, 나라입니까?”라고 던졌던 질문에 그래! 이게 나라다로 답하는 데 주저하지 않게 했다. 이제 그 탄핵은 파지 노인을 거리에서 사라지게 할 때 완성될 것이다. /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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